2015년 1월 28일 수요일

엔지니어가 보는 엔지니어링 컨설팅


사실 R&D 나 컨설팅처럼 해석을 위주로 하는 집단은 평균적인 학력도 높은 편이고 자타가 공인하는 특정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 분야의 꽤 많은 사람들이 본인들의 분야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고객을 포함해서 많은 주변 사람들이 그런 부분을 인정해 준다. 게다가 그 분야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자동으로 고객이 프로젝트를 들고오는 비지니스 모델이 형성되기만 하면 사업 자체도 잘 굴러가기 시작한다. 다만 '특정'분야라는 말 답게, 날이면 날마다 그 분야의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는 게 함정. 예를 들어 폭발과 관련된 Risk analysis 같은 거는, 규모가 왠만큼 큰 프로젝트가 아니면 잘 안한다. 하기만 하면 고객이 들고 오겠지만 안한다면 그냥 일이 없는거다.

게다가 소위 EPC(Engineering Procurement Construction) 공사를 수행하는 시행사의 입장에서는 거의 항상 제일 중요한 우선순위는 스케줄 관리다. 그리고 대부분의 문제라는게 결국 Safety Factor 의 문제이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할 때는 최대한 보수적인 엔지니어링을 통해 돈이랑 자재랑 왕창 발라버리는거지 해석이나 컨설팅이라는걸 맡기지 않고 넘어간다. 다시말해 일거리가 있어도 아주 결정적인 대가가 매우 비싸거나 감이 전혀 안잡히는 게 아니면 시행사에서 그냥 넘어가 버리는 수가 있는거다. 의외로 잠재적인 위험을 관리해야 하는 Operators (주로 오일메이저) 들은 디자인과 별도로 Risk control 이라는 차원에서 엔지니어링 컨설팅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것 같긴 하지만.

좀더 디테일한 업무로 들어가자면, 대부분의 엔지니어링 컨설팅 업무의 경우에는 입력값이 아예 다 주어지거나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문제가 되는 상황이 매우 확실하다. 예를 들어 해저 파이프라는 아이템을 다루더라도 컨설팅 회사에 문제가 갈 정도면 이미 파이프 치수, 재료, 설치위치 등이 꽤나 명확하게 정해져있다. 이렇게 아주 구체적인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업무의 특성상, 투입되는 팀도 소수 정예일 경우가 많고, 무엇보다 문제 해결을 위한 참고자료가 별로 없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짧고 굵게 일해서 해석 결과를 내놓고, 보고서를 쓸 때도 무조건 뭐가 맞다고 주장하는 식으로는 안쓰고, 결과를 보여주면서 "이건 이런저런 의미로 보인다" 정도의 조심스러운 판단을 내놓으려고 노력한다.

반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어떤 아이템을 다룰 때는, 눈금만 있는 종이 수준의 초기 상황에서 대규모 인원을 동원해서 차근차근 시간을 들여서 개념부터 만들어야 하는 일이 많다. 둘러볼 만한 Rules & Regulations 및 참고할 만한 디자인 자료도 꽤 있다. 그런데 Rules & Regulations 가 있다고 해서 다 되는게 아니고 그 안에서 최대한의 효율과 최소한의 비용 (자재, 노동력)을 달성하기 위해 엄청난 경험과 실력이 소요된다. 그 집단은 그렇게 건조 야드보다 고학력/고효율인 엔지니어링 인력과 컨설팅 회사보다 큰 규모의 엔지니어 인력을  활용해서 비싼 프로젝트의 달콤한 부분을 차지하고, 본인들이 잘 모르는 분야 + 그냥 Safety factor 만 높이기에는 좀 후달리는 문제가 나오면, 그때 컨설팅 회사를 부른다.

내가 지금 회사로 옮기기 전에, "엔지니어링 컨설팅 회사에서 일반적인 설계회사보다 더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를 하다 보면, 자칫 그게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함정'에 빠지기 쉽다"는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 몇몇 분야의 해석에만 집중해서 깊은 이해와 내공을 쌓다보면, 오히려 그 분야가 전체 프로젝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또 전체 프로젝트 수행 중 어느 시점에 나오는 문제인지 생각을 안하게 된다는 거다. 그 말이 시사하는 바대로 엔지니어링 컨설팅과 일반 엔지니어링은 서로 성격이 다르다. 이쪽에 있다가 저쪽으로 이동하기가 생각보다 어려운 두 분야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매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행여 나중에 소규모 사업을 차리려고 하면, 특정 분야의 해석 경험과 능력이 더 좋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디자인 업무를 하려고 하면 최소한 엔지니어링 팀이 하나 있어야 하는데, 반면에 컨설팅만 할거면 막말로 혼자 뛰어도 되니까. 물론 내가 그렇게 한다는 말은 아니고 Generally 그렇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