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이 블로그에 제가 쓴 말이 있습니다.
"한 때 미국 유학이 내 인생의 플랜 C 정도 되었던 시절, 나는 경영 컨설턴트가 되고 싶었다."
시간은 흘렀고 저도 지금의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었는데, 오래전에 앓던 병이 제발로 찾아왔습니다.
각설하고 오는 5월 2일부로 한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딸아이도 함께 들어갑니다. 인생의 새로운 Chapter라 생각하고 치열하게 살아볼까 합니다. 진정 인생이란 예측하기 어렵고, 오묘하고도 아름답네요.
2016년 4월 13일 수요일
2016년 2월 10일 수요일
경쟁에서 살아남기
요새 유가가 떨어지는 기세를 보면 나중에는 주유소에서 휘발유을 그냥 공짜로 주려고 이러나 싶다. 물론 그 전에 어느 시점에서 바닥을 찍고 다시 오를 게 확실하긴 하지만, 저점을 찍은 다음에 얼마나 빠르게 유가가 회복될 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하다. 아주 천천히 오른다는 의견부터 로켓처럼 치솟을거라는 의견까지 있다. 뭐 이런 내 전문분야가 아니니 결과를 봐야 그런가보다 할 것 같다.
저유가 시대에 Oil & Gas 엔지니어링 회사들의 생존전략이야 각자 다양하겠지만, 요점은 '남보다 싸게 팔기'로 가는 것 같다. 고객이 돈이 없다는데도 뭔가를 팔려면 "싸게 해줄께" 말고 뭐가 더 있겠나 (물론 "돈 꿔줄께"도 있겠지만 경쟁자가 많으면 이것도 의미없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마진 조정 정도로 해결될 시점은 이미 지났고 원가까지 가격을 후려쳐도 될까말까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해진 상태다. 엔지니어링 회사의 원가라고 하면 대충 인건비랑 간접비용인데, 인건비는 결국 엔지니어 연봉이고 간접비용은 회사의 관리자급 연봉, 건물 임대료 등이다. 많은 회사들이 작년(2015)에 군살빼기 차원에서 사람도 줄여보고 임대 건물 수도 줄여서 '전보다 싸게' 팔 수 있는 조직으로 거듭났지만, 올해도 고객은 돈이 없을 것 같고 옆건물 경쟁업체들도 매우 유사한 다이어트를 통해서 '전보다 싸게' 팔겠다고 한다. 올해 장사는 굉장히 혹독한 '남보다 싸게' 경쟁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이럴 때도 돈 버는 회사들은 꼭 있다. 박리다매 식으로 이문을 남기는 모델로 몸집을 키우면서 밀어붙이는 유형이 있고, 또 효율을 쭉 높히는(=원가를 훅 낮추는) 방법을 개발해서 고객의 큰 돈을 아끼게 해주고 상당한 이문을 챙기는 유형도 있다. 두 유형 모두 이런 팍팍한 시장에서 빛을 발하는 모델들인데, 이런 선수들 나오면 나머지 선수들 엄청 힘들어진다. 첫 번째 유형은 관리자층을 줄여서 간접비용을 절감하고 동시에 M&A를 통해 전체적인 몸집을 불리는 전략이고, 두 번째 유형은 인건비 싼 동네로 외주를 주던가 하는 방법으로 인건비를 낮추는거다. 두 번째 유형이 QA가 안된다는 반론도 있겠지만 주머니 사정이 안좋은 고객의 귀에 그게 잘 들릴지는 미지수다. 막말로 일은 시켜야겠는데 저기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무개 오피스에서 휴스턴 가격 1/3 에 해준다 하고, 좀 믿을만한 시니어 엔지니어가 날아가서 QA를 하겠다고 보장을 하면 지갑이 얇아진 고객이 콜 하지 않을까.
아니면 아예 Offshore 엔지니어링에서 발을 빼버리는 회사도 있다. 실제로 이런 유형들이 꽤 있는 모양인데, 당분간 바다쪽은 보지 않고 Civil 분야로 업종을 바꾸던가 하는거다. 그게 아니면 Offshore 엔지니어링에서 발까지 빼는 건 아니지만 Green field 말고 Brown field 를 겨냥해서 조직을 재편하는 것도 방법이다. 물론 Brown field 는 Green field 에 비하면 마진율이 상당히 낮다는 단점도 있지만, 일거리가 꾸준하다는 면에서 엄청단 장점이 있다. 이런 방법들은 마진폭이 기존 비지니스에 비해서 상당히 낮기 때문에 역시나 싼 인건비가 관건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건 모두 회사들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이고, 엔지니어 개인에게는 현실적인 선택지가 많지는 않다. 회사가 하겠다면 따라가던가 말던가 하는 정도지. 요새 같아서는 그나마 회사가 빠르게 결단을 내려서 아무 일거리라도 많이 따오면 다행이다.
2015년 7월 17일 금요일
해양 플랜트 기자재 국산화
아무런 근거없는, 그야말로 순도 100%짜리 나의 개인적인 시각에는 한국 대형 조선소들이 적자가 날 것을 알면서도 그저 그 해 실적을 위해서 대형 해양 플랜트 EPC 프로젝트에 저가입찰을 하고, 큰 이변이 없는 한 예상 범주이내이거나 혹은 그것을 좀 더 벗어나는 적자가 발생하는 게 무슨 정해진 수순처럼 보인다. 물론 근래에 발표된 말도 안되는 (2조~3조원에 이르는) H, D 조선소의 회계 적자는 사장단 교체 시기와 맞물려서 '넘어진 김에 쉬고 가지' 마인드의 '털어내기'처럼 보이지만...
2009년인가 내가 참여했던 해양 플랜트의 EPC 프로젝트에서도 그 프로젝트를 1조원이 조금 넘는 액수로 수주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주변의 고참 선배들이 불안하다 하셨던 기억이 난다. 듣자하니 저가 수주했다는데 하다보면 예상치 못한 비용이 발생할 거고 그게 쌓이면서 결국 것잡을 수 없이 소위 '빵꾸'가 난다고... 회사의 경험 부족으로 적자가 났다고 하지만, 창사이래로 수십년간 이런저런 해양 플랜트들 수주 하면서 '초기견적 대비 상당히 큰 견적 빵꾸가 나드라' 정도의 지식은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프로젝트 스케줄에 쫒겼던 당사자로서의 경험상, 프로젝트 스케줄 자체가 좀 더 설계에 시간을 들일 수 있는 구조였으면 적어도 Weight control 을 실패해서 EPC 중간에 설계를 변경하는, 그야말로 재앙에 가까운 상황은 모면했을 거라고 지금도 확신한다. Naval Architecture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건 마치 물 끓이고 라면이랑 수프 부었는데 메뉴 오더가 우동으로 바뀐 상황이다.
근래에 조선해양 관련 기사를 읽다보니 한국 모 조선소의 기자재 국산화 이야기가 보이던데, 상선이면 모를까 해양플랜트에 그런 게 전략으로 통할 지 모르겠다. 컨테이너선 같은 상선들이야 막말로 기자재를 뭘 쓰던 (국산이든 외제든) 요구되는 선급 및 몇 개 단체의 룰만 만족하면 바다에 띄워서 돌리면 되고, 행여 사고가 나도 배 하나 가라앉는 정도의 피해면 끝나지만 원유 캐는 해양플랜트가 가라앉으면... 이건 피해액 단위가 다르다. 게다가 상선 선주 입장에서는 룰이야 선급이 감리하니까 당연히 지켜진다고 보고, 조선소가 싸게 만들어 준다고 하면 '값싼게 최고지' 하고 넙죽 받아서 쓰면 그만이지만 해양플랜트는...그게 아니거든. 룰도 못미더워서 훨씬 엄격한 내부 프랙티스를 들이대고, 기자재도 돈을 더 내더라도 안전하게 좋은 걸로 가고싶은게 오너 심정인데 무슨 얼어죽을 저가 입찰에 기자재 국산화... 솔직히 한국에서 기자재 국산화 한다고 하면, '오 그럼 노르웨이 제품보다 품질이 훨씬 좋겠네?' 라고 생각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서두에서도 말했지만 밤에 술먹고 쓰는 순도 100%짜리 개인 의견으로는, 요새 한국 해양 프로젝트들 모양새가 남 잘되는 꼴 못보는 심보때문에 3사가 알아서 저가수주 들어가고, 경험이 부족하니 어쩔수 없이 프로젝트 관리가 안되서 여기저기 추가 적자 나오는 상황이다. 그러면 처음부터 손해가 안나게 적당한 마진을 책정하는 게 수순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게 발주처 입장에서는 오히려 보기 좋은 모양새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익이 보장되면 원가 쥐어짤라고 무리하지는 않을테니깐. 근데 세계 최고 3사가 그런식으로 EPC 에서 돈을 남겼다는 기사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왜일까... 비꼬는게 아니고 정말 궁금하다.
2015년 3월 21일 토요일
운과 노력
2005년도부터 시작되어 금융위기 이전까지 이어진 조선 시장의 소위 '슈퍼 사이클'은 국내 메이저 조선소의 자산 규모 뿐만 아니라 한국 내에서 조선 산업이 자리잡았던 위상을 매우 단기간에 몇 단계씩 끌어올리는데 큰 기여를 했다. 2004년에 입사했던 내가 기억하던 현대중공업의 주식은 코스닥에서도 보기 힘든 폭발적인 상승과 랠리를 이어갔고, 채용에서도 내가 입사했던 해에 뽑은 인력의 몇 배나 되는 인력을 매년 뽑아댔다. 전국의 조선해양 전공자들 (수도권이든 지방이든, 본교든 캠퍼스든 상관없었다) 은 갑자기 메이저 3사 를 골라서 갈 수 있었고, 그렇게 있는 전공자를 족족 뽑아도 조선 관련 인력이 부족해서 뒤늦게 많은 대학교들이 조선관련 학과를 부설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여기에 조선소마다 인력 유치를 위해 초봉을 대폭 끌어올리는 바람에 대졸 신입사원의 초봉이 5,000만원에 육박했다. 회사의 인기가 더욱 치솟으면서 급기야 원래 조선소에 관심을 안가지던 타과 전공자들까지 몰리기 시작했고, 입사 경쟁률은 입에 담기도 민망한 숫자에 이르렀다.
2007년, 지방의 조선소에서는 별 관심 없던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세계 선주들의 돈주머니를 사정없이 털어냈고, "만들라고 발주는 했지만 줄 돈은 없다"는, 그야말로 무슨 정치인이 청문회에서나 뱉을 법한 수준의 황당한 코멘트가 조선소에 속속들이 도착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전공이 조선이면 학교도 안보고 뽑는, 온세상이 행복할 것 같은 상황이 급변해서 이제는 당신이 최고의 학교에서 정확하게 조선소와 맞는 전공에서 1등으로 졸업해도 취업의 기회가 없다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경기를 뒤흔드는 큰 파도앞에서 개인의 노력이 허무하게 쓸려가는 현실을 보면서, 내가 원래 싫어했던 '운친기삼'같은 소리가 허튼소리가 아니었음을 온몸으로 깨달았고, 또 그렇게 단순히 졸업시기 차이때문에 승선 기회를 놓친 우수한 친구들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왜냐하면 난 우수하지도 않았고 졸업도 그냥 생각없이 했거든
2013년 봄, 그러니까 강산이 조금 바뀔만큼 시간이 지나서 다시 구직을 해야하는 상황이 찾아왔고, 머나먼 이국 땅에서 다시 기가 막히게 슈퍼 사이클의 막차에 올라탔다. 실력이 별루라 운이라도 좋았던 걸까.. 졸업 반년 전부터 지원도 안한 회사에서 인터뷰를 보자고 전화가 오고, 심지어는 전화상으로 연봉과 베네핏을 제시하면서 당장 일할 수 없겠냐는 곳도 있었다. 이름없는 작은 회사도 아니고, 정말 굵직한 회사들이 그러는 상황이었다. 졸업 시점에 테이블에 오퍼 5개를 놓고 선택을 했고, 원래 이바닥이 다 그런가보다 하는 생각에 몇몇 주변 지인들에게도 나처럼 유학 오는게 어떠냐고 권유하곤 했었다. 정말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다행히 내가 권유해서 온 사람은 없었지만, 만약에 지인이 내 말을 듣고 2013년부터 유학을 준비해서 이곳으로 왔으면 지금쯤 내 멱살을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유가가 뚝 떨어지면서 잡마켓이 얼어붙는 현실 한가운데에서 주변을 살펴보면, 왜 Oil & Gas 분야의 연봉이 타 분야에 비해서 높은지 이해도 된다. 뭐 그런다고 그 연봉을 잘 쪼개서 불황때 버틸만큼 따로 모아놓는 사람이 있을거라고는 생각 안하지만. 결국 High Risk, High Profit 이라는 거다. 아무튼 하루하루 긴장되는 직장 생활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안정적이었던 예전 한국생활로 돌아가고 싶냐고 누가 물어본다면 내 대답은 "그렇지는 않다" 다. 단지 예전에 철없던 시절에, 내가 쌓은 경력과 미국에서 조금 더 공부한 지식이면 나 하나쯤 취업할 회사가 없겠냐라는 식의 위험천만한 생각은 좀 아니었다는 거다. 운이 좋았다는 말도 지금은 수긍하고, 무엇보다 주변에서 나를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해주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2014년 12월 6일 토요일
미생을 드라마로 보고
만화로 전권을 다 사서 가지고 있는 미생을 최근에 드라마로 다시 보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한국에서 근무했던 회사는 상사는 아니었기 때문에 업무 내용을 가지고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오랜만에 다시 보는 한국식 조직문화가 그리 낯설지는 않다. 수직적인 조직내 인간 관계와 단단하지만 유연하지 못한 시스템 속에서, 윗사람이 스스로 내려오기 전에는 수평적인 인간관계가 어려운 그런 분위기는 한국 대기업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생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몸담았던 팀이 보통 한국 직장에서는 찾아보기가 어려울 만큼 멋진 곳이었다는거다. 담당 중역-부서장-팀장-선임들-나-후임들로 구성된 가스선 기본설계 기본반이라는 조직이, 그야말로 아주 따뜻하고 합리적인 곳이었다. 조직의 가장 꼭대기에서 내려오는 관료주의와 직급이 높더라도 딱히 넓어지지 않는 운신의 폭 속에서,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스스로를 낮추어서 후임들이 일하기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고 그 안에서 나도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았다. 그 팀으로 옮길 때는 프로젝트때문에 대리급이 1:1 트레이드 되어서 내가 옮긴 것이었는데, 처음에는 가기 싫다고 버티다가 옮기고 나서는 나의 약한 고집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나는 개인적으로 고등학교/대학교 동창들과도 딱히 이메일로 안부를 묻거나 하지 않지만 (물론 페이스북과 카톡으로 다들 연결은 되어있음), 몇 달에 한 번은 내가 있었던 그 팀에 연락을 하고 안부도 묻곤 한다. 그만큼이나 모든 팀원들에게 고마웠고, 또 개인적인 욕심으로 유학을 위해 퇴사를 하면서도 혹시나 나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업무적으로 힘들어지거나 관리자의 고과에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걱정도 많이 했다. 마지막에 연락을 했을 때는 근 몇년 사이에 LNG / LPG 수요가 많아져서 가스선 수주가 늘어나 많이 바쁘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기쁘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미생의 나오는 여느 팀들처럼 조직 내에서 직급을 깡패처럼 이용하는 문화 자체가 없지만, 그렇다고 팀장이 주말에 특근하는 직원들 생각해서 빵을 준비해온다거나, 혹은 가끔씩 집에 팀원들을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하는 일도 많지 않다. 물론 한국에서도 그런 팀을 만났다는 것 자체가 로또였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오죽하면 영업 3팀 같은 조직이 드라마에 나오겠나. 지금 직장생활이 행복하고 스스로 다시 돌이켜봐도 같은 선택을 했을거라고 믿지만, 그래도 현중 기본설계 2부에 있었던 당시의 추억은 길지 않은 경력 속에서 여전히 한번씩 회상하고 마음에 온기를 얻을 수 있는 값진 보물이다.
다시 미생으로 돌아와서 개인적으로 만화와 드라마 모두 나름의 구성을 잘 살려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드라마는 원작을 충실하게 재현하면서도 조금씩 살을 붙여서 미리 원작을 본 사람도 몰입할 수 있도록 내용을 재구성했고, 원작 만화는 만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속도감과 그림으로 표출되었을 때 더 간결하고 깊은 내용이 전달되는 이점을 충분히 살렸다. 한국 조직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든 한 때 했던 사람이든 본인을 등장인물에 투영해서 작품에 푹 빠지도록 만드는 매력은 원작이나 드라마나 비슷한 듯. 아래 그림은 원작 만화의 인물들, 왼쪽부터 장그래, 한석률, 장백기, 안영이.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생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몸담았던 팀이 보통 한국 직장에서는 찾아보기가 어려울 만큼 멋진 곳이었다는거다. 담당 중역-부서장-팀장-선임들-나-후임들로 구성된 가스선 기본설계 기본반이라는 조직이, 그야말로 아주 따뜻하고 합리적인 곳이었다. 조직의 가장 꼭대기에서 내려오는 관료주의와 직급이 높더라도 딱히 넓어지지 않는 운신의 폭 속에서,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스스로를 낮추어서 후임들이 일하기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고 그 안에서 나도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았다. 그 팀으로 옮길 때는 프로젝트때문에 대리급이 1:1 트레이드 되어서 내가 옮긴 것이었는데, 처음에는 가기 싫다고 버티다가 옮기고 나서는 나의 약한 고집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나는 개인적으로 고등학교/대학교 동창들과도 딱히 이메일로 안부를 묻거나 하지 않지만 (물론 페이스북과 카톡으로 다들 연결은 되어있음), 몇 달에 한 번은 내가 있었던 그 팀에 연락을 하고 안부도 묻곤 한다. 그만큼이나 모든 팀원들에게 고마웠고, 또 개인적인 욕심으로 유학을 위해 퇴사를 하면서도 혹시나 나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업무적으로 힘들어지거나 관리자의 고과에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걱정도 많이 했다. 마지막에 연락을 했을 때는 근 몇년 사이에 LNG / LPG 수요가 많아져서 가스선 수주가 늘어나 많이 바쁘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기쁘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미생의 나오는 여느 팀들처럼 조직 내에서 직급을 깡패처럼 이용하는 문화 자체가 없지만, 그렇다고 팀장이 주말에 특근하는 직원들 생각해서 빵을 준비해온다거나, 혹은 가끔씩 집에 팀원들을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하는 일도 많지 않다. 물론 한국에서도 그런 팀을 만났다는 것 자체가 로또였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오죽하면 영업 3팀 같은 조직이 드라마에 나오겠나. 지금 직장생활이 행복하고 스스로 다시 돌이켜봐도 같은 선택을 했을거라고 믿지만, 그래도 현중 기본설계 2부에 있었던 당시의 추억은 길지 않은 경력 속에서 여전히 한번씩 회상하고 마음에 온기를 얻을 수 있는 값진 보물이다.
다시 미생으로 돌아와서 개인적으로 만화와 드라마 모두 나름의 구성을 잘 살려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드라마는 원작을 충실하게 재현하면서도 조금씩 살을 붙여서 미리 원작을 본 사람도 몰입할 수 있도록 내용을 재구성했고, 원작 만화는 만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속도감과 그림으로 표출되었을 때 더 간결하고 깊은 내용이 전달되는 이점을 충분히 살렸다. 한국 조직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든 한 때 했던 사람이든 본인을 등장인물에 투영해서 작품에 푹 빠지도록 만드는 매력은 원작이나 드라마나 비슷한 듯. 아래 그림은 원작 만화의 인물들, 왼쪽부터 장그래, 한석률, 장백기, 안영이.
2014년 8월 15일 금요일
"XX이는 공부는 잘 했다는 것 같은데, 사람은 어때요?"
아주 전형적인 레퍼런스 체크 질문이다. 어차피 공부야 성적표 한 장만 봐도 대충 나오는 법. 그런데 공부 잘하는 것과 별개로 그 사람과 몇 년동안 매일아침 얼굴을 마주쳐야 한다면 성적표만 가지고 결정을 할 수는 없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함께 일해야 하는 사람을 고를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면 성적은 필요한 정도만 채우고 성격이 아주 나이스한 사람을 고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경험한 한국의 회사처럼 수직/상하 관계가 많은 조직에서 내가 윗사람이면 좀 덜하겠지만, 지금 직장처럼 상사와 부하가 역할상으로만 나눠지고 실제로는 거의 수평관계인 조직에서는 개인의 성격이라는게 때로는 성적표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아마 한국에서도 서로의 권한을 존중해주고 또 서로 오래 봐야하는 조직이면 사람을 뽑을 때 이런 조사가 들어가지 않을까?
또 성적은 숙제를 제때 잘 내고 수업을 안빠지는 성실함과, 시험을 잘 준비해서 높은 점수를 받으면 당연히 잘 나오는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직장에서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말로 하기도 쉽지 않고 실천하기는 더 어렵다. 참고서를 사더라도 실제로 성공 가능한 건 공부쪽이지 회사 인간관계기술은 책 좀 읽는다고 쉽게 향상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한국에서조차 회사에 들어가면 공부 아주 잘해야 간다는 대학교 출신들이 꽉막힌 사람 취급이나 받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2014년 3월 29일 토요일
2014년도 KOEA/KSEA joint Technical Seminar 를 마치며
휴스턴에 나온지 1년도 안되어 KOEA 총무라는 자리를 맡아 나름대로 노력과 시간을 투자했던 1분기 KOEA/KSEA joint Technical Seminar 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사실 내가 한 일은 별로 없고, 경험이 풍부한 김민수 부회장님 지휘아래 총무 포함 모든 임원단 사람들이 아낌없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준비가 이루어졌다. 준비, 과정 그리고 결과 모두 괜찮았다고 스스로 평가는 하지만 그래도 몇 가지 잊지 말고 다음 분기에 챙겨야 할 것들을 정리한다.
1. 공지문
처음 나갔던 공지에서 참가자의 Email 입력란을 안만들어서 RSVP 인원 전체의 절반의 email 주소를 못받았다. 당일에 명함 및 방명록으로 해결했지만, 역시나 처음에 다 받는게 일을 줄이는 지름길이다.
2. 장소문제
거의 매년 Korea House 에서 열리다보니 음식의 선택권이 좀 좁았는데, 작년 YPW 처럼 한인회관에서 고려원 식사를 Catering 으로 주문하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이 나왔다. 식비를 비교해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으며, 작년 YPW 식사는 내가 기억하기에도 정말 맛이 좋았다.
3. 설문지
설문지를 만들어서 출력까지 해놓고 깜빡해서 못썼다. 다음번에는 프로그램을 잘 짜서 설문조사를 일괄로 받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
4. 식권준비
미리 식권을 준비해놔야 음식 준비 및 계산이 원활한데, 이번엔 가계측도 우리측도 깜빡하는 바람에 음식 준비에 혼란이 많았다.
이외에도 KOEA 본질은 아니지만 참석한 학생들이 네트워킹을 통해서 Job opportunity 를 모색하는 경향도 보였는데, 작년대비 구직이 조금 어려워 보이는 올해의 경우, KOEA 행사가 어떻게든 구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나 예년부터 꾸준히 KOEA 행사에 참석했던 몇 학생의 경우에는 임원진 분들이 개인적으로 이력서를 요청하시는 경우도 있어서 개인적으로 더욱 이 행사에 보람이 느껴졌던 것 같다.
1. 공지문
처음 나갔던 공지에서 참가자의 Email 입력란을 안만들어서 RSVP 인원 전체의 절반의 email 주소를 못받았다. 당일에 명함 및 방명록으로 해결했지만, 역시나 처음에 다 받는게 일을 줄이는 지름길이다.
2. 장소문제
거의 매년 Korea House 에서 열리다보니 음식의 선택권이 좀 좁았는데, 작년 YPW 처럼 한인회관에서 고려원 식사를 Catering 으로 주문하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이 나왔다. 식비를 비교해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으며, 작년 YPW 식사는 내가 기억하기에도 정말 맛이 좋았다.
3. 설문지
설문지를 만들어서 출력까지 해놓고 깜빡해서 못썼다. 다음번에는 프로그램을 잘 짜서 설문조사를 일괄로 받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
4. 식권준비
미리 식권을 준비해놔야 음식 준비 및 계산이 원활한데, 이번엔 가계측도 우리측도 깜빡하는 바람에 음식 준비에 혼란이 많았다.
이외에도 KOEA 본질은 아니지만 참석한 학생들이 네트워킹을 통해서 Job opportunity 를 모색하는 경향도 보였는데, 작년대비 구직이 조금 어려워 보이는 올해의 경우, KOEA 행사가 어떻게든 구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나 예년부터 꾸준히 KOEA 행사에 참석했던 몇 학생의 경우에는 임원진 분들이 개인적으로 이력서를 요청하시는 경우도 있어서 개인적으로 더욱 이 행사에 보람이 느껴졌던 것 같다.
2014년 1월 23일 목요일
인정받는 직업?
한 때 미국 유학이 내 인생의 플랜 C 정도 되었던 시절, 나는 경영 컨설턴트가 되고 싶었다. Top Tier 펌에 있는 컨설턴트들의 무시무시한 고스펙과 또 겉으로 드러나는 똑똑함, 그리고 무엇보다 대기업의 경영진과 직접 경영을 논의할 수 있다는 업무상 혜택등이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었다. 또 그 사람들의 일원이 되고 싶어서 그 진입장벽 밖에서 발을 동동 굴리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진입장벽 속으로 들어간 사람이 대단해 보이고, 나도 그사람들처럼 언젠가는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플랜 C 가 A, B 를 제치고 올라온 이유는 간단하다. A, B 가 다 안된거지. 그리하여 2010년 8월까지 관심도 없었던 대학원이 바로 그 다음달부터 인생의 목표가 됐다 (정확히는 대학원 졸업 후 취업이 목표였지만). 운 좋게 벼락치기로 준비한 시험을 내서 미국까지 넘어왔지만, 그래서인지 오랜 시간동안 학교에 머물면서 교직을 장래 희망으로 생각하게 된 학생들과 사고방식에 제법 큰 Gap이 있었던 것 같다. 사실 그전까지 학계고 뭐고 아는 바도 없고 관심도 없었지만, 대학원에서 만난 학생들이 한국 교수직을 목표로 공부와 연구에 매진하는 것을 보며 예전에 맥킨지 컨설턴트를 바라보던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나 그 학생들이나, 자신이 인생에서 겪은 체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이 직업이 최고다"라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 한 번은 그런 학생 중 한 명과 서로의 시각에 대해 의견을 나눈 적이 있었는데 사실 나는 그 학생의 장래 희망이 이해가 안됐고, 그 학생역시 지난 시절의 내 꿈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누가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그 대화는 나에게 참 귀중한 경험이 됐다. 물론 교직이 목표가 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연구가 좋아서", "가르치는 것이 좋아서" 등등 다양하긴 한데, 꽤 많은 경우에 "한국에서 교수직은 인정을 받으니까" 라는 답변이 붙어서 온다.
그런데, 정말 그런 것일까? 내가 "한국에서 맥킨지(꼭 맥킨지 아니더라도 비슷한 회사) 다니면 인정받지"라고 말했을 때,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뭐하러 고용 안정성도 떨어지고 오래 머물지도 못할 회사를 고생해서 가냐 이거다. 백번 맞는 말이다. 나도 "훗날 학생을 가르치고 싶고 + 인정받고 싶어서" 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대학교까지 해서 10년 넘게 투자해서 얻은 그 직업이, 보수는 괜찮냐고. 그럼 또 별로라는 답변이 온다. 그럼 왜 그게 하고 싶냐고 물어보게 되는 이유다. 서로 인정받는 자리, 즉 명예에 대한 지식과 관점이 다른 거겠지...
2013년 12월 28일 토요일
집을 사다.
미국에 온 지 이제 만 2년...드디어 우리 명의로 된 집을 구입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구할 때까지도 못느꼈는데, 이제 집을 사고나니 '내가 미국에 정착을 하나보다' 하는 생각이 드네요...
2013년 11월 19일 화요일
두 번째 블로그
원래 네이버에 블로그가 있긴 했는데, 워낙에 폐쇠적으로만 사용을 해와서, 이참에 블로그를 하나 만들어 봤습니다. 지난일도 포함해서 유학, 직장생활, 그리고 소소한 일상과 고찰을 남겨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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