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전권을 다 사서 가지고 있는 미생을 최근에 드라마로 다시 보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한국에서 근무했던 회사는 상사는 아니었기 때문에 업무 내용을 가지고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오랜만에 다시 보는 한국식 조직문화가 그리 낯설지는 않다. 수직적인 조직내 인간 관계와 단단하지만 유연하지 못한 시스템 속에서, 윗사람이 스스로 내려오기 전에는 수평적인 인간관계가 어려운 그런 분위기는 한국 대기업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생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몸담았던 팀이 보통 한국 직장에서는 찾아보기가 어려울 만큼 멋진 곳이었다는거다. 담당 중역-부서장-팀장-선임들-나-후임들로 구성된 가스선 기본설계 기본반이라는 조직이, 그야말로 아주 따뜻하고 합리적인 곳이었다. 조직의 가장 꼭대기에서 내려오는 관료주의와 직급이 높더라도 딱히 넓어지지 않는 운신의 폭 속에서,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스스로를 낮추어서 후임들이 일하기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고 그 안에서 나도 분에 넘치는 대우를 받았다. 그 팀으로 옮길 때는 프로젝트때문에 대리급이 1:1 트레이드 되어서 내가 옮긴 것이었는데, 처음에는 가기 싫다고 버티다가 옮기고 나서는 나의 약한 고집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나는 개인적으로 고등학교/대학교 동창들과도 딱히 이메일로 안부를 묻거나 하지 않지만 (물론 페이스북과 카톡으로 다들 연결은 되어있음), 몇 달에 한 번은 내가 있었던 그 팀에 연락을 하고 안부도 묻곤 한다. 그만큼이나 모든 팀원들에게 고마웠고, 또 개인적인 욕심으로 유학을 위해 퇴사를 하면서도 혹시나 나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업무적으로 힘들어지거나 관리자의 고과에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걱정도 많이 했다. 마지막에 연락을 했을 때는 근 몇년 사이에 LNG / LPG 수요가 많아져서 가스선 수주가 늘어나 많이 바쁘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기쁘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미생의 나오는 여느 팀들처럼 조직 내에서 직급을 깡패처럼 이용하는 문화 자체가 없지만, 그렇다고 팀장이 주말에 특근하는 직원들 생각해서 빵을 준비해온다거나, 혹은 가끔씩 집에 팀원들을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하는 일도 많지 않다. 물론 한국에서도 그런 팀을 만났다는 것 자체가 로또였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오죽하면 영업 3팀 같은 조직이 드라마에 나오겠나. 지금 직장생활이 행복하고 스스로 다시 돌이켜봐도 같은 선택을 했을거라고 믿지만, 그래도 현중 기본설계 2부에 있었던 당시의 추억은 길지 않은 경력 속에서 여전히 한번씩 회상하고 마음에 온기를 얻을 수 있는 값진 보물이다.
다시 미생으로 돌아와서 개인적으로 만화와 드라마 모두 나름의 구성을 잘 살려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드라마는 원작을 충실하게 재현하면서도 조금씩 살을 붙여서 미리 원작을 본 사람도 몰입할 수 있도록 내용을 재구성했고, 원작 만화는 만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속도감과 그림으로 표출되었을 때 더 간결하고 깊은 내용이 전달되는 이점을 충분히 살렸다. 한국 조직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든 한 때 했던 사람이든 본인을 등장인물에 투영해서 작품에 푹 빠지도록 만드는 매력은 원작이나 드라마나 비슷한 듯. 아래 그림은 원작 만화의 인물들, 왼쪽부터 장그래, 한석률, 장백기, 안영이.
2014년 12월 6일 토요일
2014년 11월 6일 목요일
유학생 출신 Oil & Gas 분야 엔지니어 (인터뷰)
취업 컨설턴트와의 인터뷰 (원글 http://listenerh.blog.me/220172957281)
H: 안녕하세요?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엄태성( 이하 MR.엄 ) : 네, 안녕하세요? 저는 엄태성이라고 합니다. 지금 현재는 Atkins라는 영국계 엔지니어링 컨설팅 회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직급은 시니어 컨설턴트입니다. 회사는 영국계 회사이지만, 현재 휴스턴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H: 엔지니어링 컨설팅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을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MR.엄: 엔지니어링 컨설팅은 한국에서는 조금 생소한 개념일 수 있습니다. 엔지니어링과 엔지니어링 컨설팅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일을 하는 상황의 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엔지니어링은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Skill Set이 정해져 있습니다. 고객은 그 Skill Set를 보고 그것을 기반으로 해서 이런 Product를 만들고 싶다는 요구 사항을 가지고 그런 회사에 접근을 하게 됩니다. 그럼 엔지니어링 회사에서는 그런 고객의 요구에 맞춰 중,장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이런 회사들의 특징은 항상 비슷한 결과물들이 나오는 프로젝트를 중점적으로 한다는 점입니다. 또한 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 많은 엔지니어들의 능력과 시간을 집중적으로 투입을 하게 됩니다.
( 예를 들면, 휴스턴에는 FPSO 구조물의 Transportation을 전문으로 하는 엔지니어링 회사나FPSO Top Side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엔지니어링 회사 등이 있습니다. )
반면에 엔지니어링 컨설팅은 큰 규모의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중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특정 부분의 문제점들을 전문적으로 해결하는 회사입니다. 이를 위해 심도 깊은 지식과 오랜 경험을 가진 컨설턴트들이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결과물을 내게 됩니다. 또한 각 엔지니어링 회사들의 Main Stream에 해당되지는 않으나 꼭 필요한 여러 부수적인 부분들의 엔지니어링 부분도 상당 부분 맡아서 하는 회사입니다.
(H: 실제로 Atkins는 Structure 부분에서 강점을 가진 컨설팅 회사입니다. 특히 Blast, 구조물의 내구성, 지속성 Part에 관련되어 미국내 유수의 Oil Major 회사들의 중단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H: 오랜 경험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요, 원래부터 엔지니어링 컨설팅 분야에서 계속 일을 하셨나요? 또한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오래 하셨습니까?
MR.엄: 저는 미국에서 일을 시작한 지는 1년 반 정도 되었습니다. 한국에 조선소에서 7년 반 동안 근무를 하였습니다. 처음 3년 동안은 잠수함 설계 파트 일을 하였고, 그 후 상선 및 FPSO 기본 설계를 하였습니다. ( 미국에서는 Naval Architecture 라고 부르는 일을 하였습니다.)
H: 그럼 미국으로 바로 이직을 하셨나요? 어떤 계기로 이직을 결심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MR.엄: 처음에는 미국으로 바로 이직을 알아봤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조선소는 전세계에서 1위입니다. 또한 한국 조선소의 엔지니어들이 하는 일들이 현재 휴스턴 엔지니어들이 하는 일과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엔지니어들이 받는 대우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연봉 및 복지, 그리고 일을 할 수 있는 환경 면에서 휴스턴이 제게는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미국에는 이미 아시아권(한국, 중국, 인도 등)에서 많은 엔지니어들이 유학을 나와 있었습니다. 외국인들이 미국에서 일을 하려면 합법적으로 취업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미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은 OPT 라는 학생 비자 기간 유예를 통해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잡한 H 비자 진행보다는 적시에 일을 할 수 있는 OPT 학생 비자 소지자를 회사에서는 더 선호를 하는 편입니다. 저 역시 실력이 아닌 신분 문제 때문에 이직보다는 유학이 훨씬 더 유리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2년 동안 석사 과정을 한 후, 현지에서 취업을 하였습니다.
(H: 비자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H: 석사 시절은 어떠셨나요? 대학원 공부는 많이 어렵지는 않으셨나요? 그리고 학비는 어떻게 충당하셨나요?
MR.엄: 저는 Texas A&M 이라는 학교에서 Ocean Engineering을 공부하였습니다. 학비 문제는 워낙 학교나 전공에 따라 천차 만별이라 제 경우가 보편적이라고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입학 당시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1000 장학금인데요, 이 장학금을 받게 되면 학비가 Out of State에서 In State 학비로 바뀌게 됩니다. 텍사스주는 텍사스 주에서 몇 년 이상 거주하고, 이 곳에서 고등학교 내지는 대학교를 나온 학생에게는 타주나 해외에서 오는 학생들에 비해 절반 이상 싼 학비를 청구합니다. $1000 장학금을 받았던 저는 감사하게도 텍사스 거주 학생들과 같은 학비를 낼 수 있었습니다. 또한 1년이 지난 후에는 지도 교수님의 프로젝트에 참여를 하면서 RA로 일을 하며, 생활비를 보조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정도 돈이면 1인 생활비는 어느 정도 커버를 할 수 있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아내와 아이가 있었기 때문에 직장 생활을 하며 모아 두었던 돈으로 충당하였습니다.
공부와 같은 경우는 석사 과정에서는 학부때 배운 것을 약간 더 깊게 공부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학적인 내용에서는 학업을 따라가는 데 아주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영어로 공부를 하고 교수님, 동기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학교 수업 보다는 영어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H: 석사 과정 중에 진로에 대한 고민은 많이 하셨지요? 어떤 준비를 하셨었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MR.엄: 저 같은 경우는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취업을 목표로 하였기 때문에 따로 박사 과정에 대해 고민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러 선배님들께서도 석사만 마치고도 취업을 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취업을 위해 크게 세가지 정도를 했습니다.
첫번째는 학교 세미나 시간 활용입니다. 저희 과에서는 일주일에 한번씩 휴스턴 회사의 엔지니어들이 와서 세미나를 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항상 세미나 시간 중에 질문을 하고, 끝난 후에는 제 자신을 소개하며 직장을 구하고 있다는 것을 어필하였습니다. 물론 그때 왔던 회사에 취업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주었던 이력서들이 휴스턴 업체들에서 돌고 돌아 제가 졸업할 무렵, 지원하지 않았던 회사에서도 잡 오퍼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두번째는 같은 학교 학생들과 교류 및 학교 지원 활용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외국인이다보니 영어가 가장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같은 과의 한국인이 아닌 다른 학생들과도 활발한 교류를 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때 만났던 친구들은 지금 직장을 다니는 제게는 소중한 인맥이 되었습니다. 그 외에서 학교에서 지원해주는 취업지원실 내지는 학교 내 선교를 위한 목사님의 무료 영어 성경 공부에 적극적으로 참석하면서 영어, 미국 문화 그리고 현지 취업에 필요한 팁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휴스턴 내 한인 교류 단체에 적극적으로 참석하였습니다. 휴스턴에는 한인 엔지니어들이 주축이 되는 다양한 모임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단체들에 적극적으로 가서 제 자신으로 소개하고, 구직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또한 제가 조선해양공학과를 졸업을 했기에 휴스턴에 많은 선배님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께도 적극적으로 조언을 구하고 부탁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미국에 많은 회사들이 이런 인맥을 통해 서로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내부 추천을 하기 때문에 이런 사회 활동은 구직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H: 석사 시절, 소개해 주실 만한 다른 일은 없나요?
MR.엄: 1년을 마치고 난 후, 저는 휴스턴의 Dockwise라는 회사에서 인턴을 하였습니다. 미국에는 대학원 학생 중에서 1년 이상 수업을 들은 학생이 합법적으로 인턴을 할 수 있는 CPT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저 역시 그 제도를 통해 3달 반동안 Full time으로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일을 하면서 실질적인 휴스턴 엔지니어링 회사 생활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고, 많은 사람들과의 인맥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제 자신의 엔지니어링 스킬에 대해 미국 현지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실질적으로 외국인을 뽑을 때에는 미국 현지 회사에서의 근무 경험 유무가 큰 평가 요소가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보다 검증된 사람을 뽑으려는 회사의 노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때 인턴 경험이 나중에 구직을 할 때 큰 도움이 되었고, 인턴을 했던 회사에서도 잡 오퍼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H: 지금 하고 계신 회사 생활에 대해서 여쭤보겠습니다. 우선 장점 세가지만 말씀해 주시겠어요?
MR.엄: 휴스턴에서 일을 하는 것은 참 즐거운 경험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번째, 저는 제가 맡은 일에 보다 더 집중을 할 수 있는 근무 환경이 마음에 듭니다. 한국에서는 일을 하는 중간에도 상사분들의 부르심이나 회의 참석, 업무와는 상관없는 잡무 등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는 제가 일을 하는 동안, 매니저라 해도 제 스케줄을 체크한 후 부르고, 회의도 모두가 되는 시간을 미리 확인한 후에 잡기 때문에 일에 집중해 있는 동안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일을 할 때 꼭 필요한 프로그램이나 쾌적한 환경을 위해 회사에서 최선을 다해 지원을 해주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두번째는 유연성이 있는 시간 관리입니다. 이곳에서는 일찍 출근을 하면 일찍 퇴근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제가 다니는 회사는 9/80 시스템을 도입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9일 동안 80시간을 근무를 하는 것인데, 한 주는 5일을 근무하고 다음 주는 4일만 근무를 하는 것입니다.격주로 금요일부터 쉴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입니다.
마지막으로 보상 부분입니다. 비슷한 일을 하지만 이곳의 연봉이 훨씬 높습니다. 특히 휴스턴의 집값 내지는 식비 및 공산품은 제가 있던 울산과 비슷한데 연봉이 높다보니 삶의 질이 더 높아 진다고 생각합니다.
H: 좋은 점이 있으면 안 좋은 면도 있습니다. 이곳에서 일을 함에 있어 어려움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MR.엄: 글쎄요. 가장 큰 어려움은 커뮤니케이션입니다. 한국에서라면 사소한 농담 같은 것도 이곳에서는 한번 더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영어에 대한 한계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자 가장 큰 부담이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H: 혹시 이곳에서 외국인으로써 한계는 없나요?
다른 분야는 잘 모르겠지만 현재 제가 몸 담고 있는 분야에서는 글래스 실링, 유리천장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매니저 이상으로 올라가신 한국분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외국인이어서 아시아인이어서 한계보다는 영어, 커뮤니케이션이 더 큰 한계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네, 지금까지 귀한 경험을 나눠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휴스턴에서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출처] Atkins Senior Consultant 엄태성|작성자 listenerh
Soryu class Submarine
- Main dimensions -
Surfaced displacement: 2,900 tonnes
Submerged displacement: 4,200 tonnes
L / B / D: 84.0 m / 9.1 m / 8.5 m
Max. submersible depth: 500 m
Complement: 65 (officers 56 enlisted)
Operational speed (submerged): 20 knots
Armament: 6 x HU-606 21 in (533 mm) torpedo tubes with 30 reloads for:
1) Type 89 torpedos
2) UGM-84 Harpoon
Shipyard: Mitsubishi Heavy Industries & Kawasaki Heavy Industries
Surfaced displacement: 2,900 tonnes
Submerged displacement: 4,200 tonnes
L / B / D: 84.0 m / 9.1 m / 8.5 m
Max. submersible depth: 500 m
Complement: 65 (officers 56 enlisted)
Operational speed (submerged): 20 knots
Armament: 6 x HU-606 21 in (533 mm) torpedo tubes with 30 reloads for:
1) Type 89 torpedos
2) UGM-84 Harpoon
Shipyard: Mitsubishi Heavy Industries & Kawasaki Heavy Industries
2000년도 중반까지 일본 해군 주력 잠수함이었던 Oyashio class 를 대체하는 잠수함으로써, Sterling engine-based air independent propulsion (AIP) system 과 선미의 X 자형 타가 특징인 디젤 추진 방식 잠수함. X자형 타는 독일의 주력함인 212 급 잠수함이 2000년도 초에 채택했던 디자인인데, 일본에서도 이번에 채택이 됐다. 엔지니어링 측면에서 어떤 이점이 있는 지 궁금한 부분이다. 선체도 사실 시가(Cigar)형 선형으로, 완전히 실린더같은 단면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국의 209, 214급 잠수함의 선형과 차별화가 된다. 또 놀라운 건 배수량이 4,000 톤이 나오는데도 추진 및 발전 시스템이 원자력이 아니라는 점이다. 내가 Sterling 사 깔려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실 그쪽 AIP는 운영 전력에 큰 도움 안된다. 한국 해군에서 현재 채택한(수입한 거지만) 수소연료식 AIP 가 제일 효율 높은 건데도 그냥 잠수함 쉴 때 잠시 한숨 돌릴 수 있을까 말까할 정도의 전력이 나오니깐. 내가 조선소에 있을 때 차세대의 다음 세대 (뭐라고 불러야 되냐 이러면) 잠수함의 개념 설계 차원에서 목표로 잡았던 것이 3,000 톤급이었다. 당시 설계부 사람들끼리 '이게 과연 될까' 하는 이야기가 나왔을 정도로 기술적으로 머나먼 수준에 있었던 잠수함이 당시 일본 해군에서는 이미 꾸역꾸역 건조되고 취역해서 운항되고 있었고 이제는 그것조차 넘어선 사이즈와 기술력을 갖춘 잠수함이 실제로 운영되고 있다.
취미 밀리터리 내용과는 별개로 좀 현실적인 상황도 보자면, 일본 잠수함은 거의 매년 1척이 두 조선소에서 번갈아 건조되고 같은 페이스로 퇴역하고 그 이후 스크랩 하는게 아니고 잘 포장해서 간직해 놓는다. 실제 운영 잠수함의 수는 대충 20척 내외로 유지하면서 대외적으로는 소규모의 해군 전력을 표방하지만 사실 운영중인 잠수함도 한국/중국꺼랑 비교하면 전력이 우세한데, 운영 숫자도 더 많은데다가 집계에 안잡히는 올드 보이들이 산처럼 쌓여 있는거다. 군력 측면에서 주변국가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게다가 영토도 섬나라니 방어에는 최적의 상황이 아닐까.
생각난 김에 쓴소리도 하자면 매번 입찰방식으로 한푼이라도 깎자는 한국 정부랑, 적자를 보더라도 남이 가져가는 꼴은 못보겠다는 현대중공업H, 대우조선해양D 조선소의 뭐하나 득될 것 없는 수주 경쟁때문에 제대로 된 기술 육성도 안되고 있는 형편이라 잠수함 관련 기술이 옆나라를 따라잡는 그날은 요원하기만 하다. 아래는 SS502호선 '운류'.
2014년 8월 15일 금요일
"XX이는 공부는 잘 했다는 것 같은데, 사람은 어때요?"
아주 전형적인 레퍼런스 체크 질문이다. 어차피 공부야 성적표 한 장만 봐도 대충 나오는 법. 그런데 공부 잘하는 것과 별개로 그 사람과 몇 년동안 매일아침 얼굴을 마주쳐야 한다면 성적표만 가지고 결정을 할 수는 없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함께 일해야 하는 사람을 고를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면 성적은 필요한 정도만 채우고 성격이 아주 나이스한 사람을 고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경험한 한국의 회사처럼 수직/상하 관계가 많은 조직에서 내가 윗사람이면 좀 덜하겠지만, 지금 직장처럼 상사와 부하가 역할상으로만 나눠지고 실제로는 거의 수평관계인 조직에서는 개인의 성격이라는게 때로는 성적표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아마 한국에서도 서로의 권한을 존중해주고 또 서로 오래 봐야하는 조직이면 사람을 뽑을 때 이런 조사가 들어가지 않을까?
또 성적은 숙제를 제때 잘 내고 수업을 안빠지는 성실함과, 시험을 잘 준비해서 높은 점수를 받으면 당연히 잘 나오는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직장에서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말로 하기도 쉽지 않고 실천하기는 더 어렵다. 참고서를 사더라도 실제로 성공 가능한 건 공부쪽이지 회사 인간관계기술은 책 좀 읽는다고 쉽게 향상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한국에서조차 회사에 들어가면 공부 아주 잘해야 간다는 대학교 출신들이 꽉막힌 사람 취급이나 받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2014년 8월 14일 목요일
Paper 를 써보면서
논문 내용을 바탕으로 쓰는 거라 수월하게 갈 줄 알았는데, 막상 쓰기 시작하니 뭐하나 쉬운게 없다는 말이 딱인 듯. 내가 쓴 논문을 다시보니 이해가 안가다가도 막상 이해를 하고 보니 잘못 쓴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지금와서 고칠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그냥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하기로...다시 잘 생각해보면 석사논문 하나 썼다고 글쓰기 숙달이 되었을 리도 없고, 8년을 일하다가 2년동안 짧게 공부한 내용이 머리속에 잘 남아있기도 어려운 게 당연하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하나 써서 최근에 어드바이저에게 최종 제출했다. 그나마 그것도 교수님께서 수정을 봐주시고 나서야 겨우 완성. 근데 이것도 왠지 제출하는게 끝일 것 같지가 않다는...
I quit.
7월 초부터 H1b transfer 준비와 처리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8월 중순에야 회사에 이야기를 꺼냈다.
"항상 도와주고 지지해줘서 고맙다. 이런말을 하게 되어 유감이지만...(중략) 이것은 공식적인 사직서이며 매니지먼트에 전달해주면 감사하겠다"
뭐 이런 내용이다. 그 다음부터는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는 것처럼 소문이 인터넷 전산망의 속도로 전파되고 평소에 친분이 있었던 동료와 매니저들이 하나둘씩 자리에 슬쩍 나타나는 것이 거의 정해진 절차. 대부분의 대화에서 "새로운 출발을 축하한다", "어디로 가는거냐", "가기 전에 점심 한 번 먹자" 뭐 이런 이야기들이 오간다. 더불어 가끔은 "여기 내 이력서다 가지고 있어라" 뭐 이런 것도 있다.
그리고는 좀 높은 사람과의 면담이 이어진다.
면담의 요지는 "어떻게 하면 안 나갈 수 있는지 알려줄 수 있냐". 혹시나 업무상 불공평한 대우를 받은 적이 있는지, 아니면 옮겨가고 싶은 팀이나 해보고 싶은 일이 있지는 않은지, 그것도 아니면 영주권을 바로 해주거나 연봉을 더 올려주면 어떤지 등 직간접적으로 부드럽게 다 훑어본다. 사실 뭐 회사에 아주 서운한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남아있을 생각이 0%인 상황이라 그냥 질문마다 여지를 안남기는 답변이 나간다. 그 대신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근래에 나갔던 사람들이 했던 말이 있었는지, 혹시 C라는 매니저가 업무상 어떤 시점에 너에 대한 업무 배치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냐는 질문이 나온다. 거짓말을 할 수는 없는 상황인데 사실대로 말하면 C는 체크메이트. 미안하지도 않지만 나는 분명 이야기 꺼내지 않았다고 마음속으로 둘러대며 굳히기에 들어간다. 앞전에 나갔던 사람들이 아주 연설을 토하고 갔었나보다...
2014년 4월 3일 목요일
2014년 3월 29일 토요일
2014년도 KOEA/KSEA joint Technical Seminar 를 마치며
휴스턴에 나온지 1년도 안되어 KOEA 총무라는 자리를 맡아 나름대로 노력과 시간을 투자했던 1분기 KOEA/KSEA joint Technical Seminar 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사실 내가 한 일은 별로 없고, 경험이 풍부한 김민수 부회장님 지휘아래 총무 포함 모든 임원단 사람들이 아낌없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준비가 이루어졌다. 준비, 과정 그리고 결과 모두 괜찮았다고 스스로 평가는 하지만 그래도 몇 가지 잊지 말고 다음 분기에 챙겨야 할 것들을 정리한다.
1. 공지문
처음 나갔던 공지에서 참가자의 Email 입력란을 안만들어서 RSVP 인원 전체의 절반의 email 주소를 못받았다. 당일에 명함 및 방명록으로 해결했지만, 역시나 처음에 다 받는게 일을 줄이는 지름길이다.
2. 장소문제
거의 매년 Korea House 에서 열리다보니 음식의 선택권이 좀 좁았는데, 작년 YPW 처럼 한인회관에서 고려원 식사를 Catering 으로 주문하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이 나왔다. 식비를 비교해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으며, 작년 YPW 식사는 내가 기억하기에도 정말 맛이 좋았다.
3. 설문지
설문지를 만들어서 출력까지 해놓고 깜빡해서 못썼다. 다음번에는 프로그램을 잘 짜서 설문조사를 일괄로 받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
4. 식권준비
미리 식권을 준비해놔야 음식 준비 및 계산이 원활한데, 이번엔 가계측도 우리측도 깜빡하는 바람에 음식 준비에 혼란이 많았다.
이외에도 KOEA 본질은 아니지만 참석한 학생들이 네트워킹을 통해서 Job opportunity 를 모색하는 경향도 보였는데, 작년대비 구직이 조금 어려워 보이는 올해의 경우, KOEA 행사가 어떻게든 구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나 예년부터 꾸준히 KOEA 행사에 참석했던 몇 학생의 경우에는 임원진 분들이 개인적으로 이력서를 요청하시는 경우도 있어서 개인적으로 더욱 이 행사에 보람이 느껴졌던 것 같다.
1. 공지문
처음 나갔던 공지에서 참가자의 Email 입력란을 안만들어서 RSVP 인원 전체의 절반의 email 주소를 못받았다. 당일에 명함 및 방명록으로 해결했지만, 역시나 처음에 다 받는게 일을 줄이는 지름길이다.
2. 장소문제
거의 매년 Korea House 에서 열리다보니 음식의 선택권이 좀 좁았는데, 작년 YPW 처럼 한인회관에서 고려원 식사를 Catering 으로 주문하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이 나왔다. 식비를 비교해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으며, 작년 YPW 식사는 내가 기억하기에도 정말 맛이 좋았다.
3. 설문지
설문지를 만들어서 출력까지 해놓고 깜빡해서 못썼다. 다음번에는 프로그램을 잘 짜서 설문조사를 일괄로 받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
4. 식권준비
미리 식권을 준비해놔야 음식 준비 및 계산이 원활한데, 이번엔 가계측도 우리측도 깜빡하는 바람에 음식 준비에 혼란이 많았다.
이외에도 KOEA 본질은 아니지만 참석한 학생들이 네트워킹을 통해서 Job opportunity 를 모색하는 경향도 보였는데, 작년대비 구직이 조금 어려워 보이는 올해의 경우, KOEA 행사가 어떻게든 구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나 예년부터 꾸준히 KOEA 행사에 참석했던 몇 학생의 경우에는 임원진 분들이 개인적으로 이력서를 요청하시는 경우도 있어서 개인적으로 더욱 이 행사에 보람이 느껴졌던 것 같다.
2014년 1월 23일 목요일
인정받는 직업?
한 때 미국 유학이 내 인생의 플랜 C 정도 되었던 시절, 나는 경영 컨설턴트가 되고 싶었다. Top Tier 펌에 있는 컨설턴트들의 무시무시한 고스펙과 또 겉으로 드러나는 똑똑함, 그리고 무엇보다 대기업의 경영진과 직접 경영을 논의할 수 있다는 업무상 혜택등이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었다. 또 그 사람들의 일원이 되고 싶어서 그 진입장벽 밖에서 발을 동동 굴리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진입장벽 속으로 들어간 사람이 대단해 보이고, 나도 그사람들처럼 언젠가는 그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플랜 C 가 A, B 를 제치고 올라온 이유는 간단하다. A, B 가 다 안된거지. 그리하여 2010년 8월까지 관심도 없었던 대학원이 바로 그 다음달부터 인생의 목표가 됐다 (정확히는 대학원 졸업 후 취업이 목표였지만). 운 좋게 벼락치기로 준비한 시험을 내서 미국까지 넘어왔지만, 그래서인지 오랜 시간동안 학교에 머물면서 교직을 장래 희망으로 생각하게 된 학생들과 사고방식에 제법 큰 Gap이 있었던 것 같다. 사실 그전까지 학계고 뭐고 아는 바도 없고 관심도 없었지만, 대학원에서 만난 학생들이 한국 교수직을 목표로 공부와 연구에 매진하는 것을 보며 예전에 맥킨지 컨설턴트를 바라보던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나 그 학생들이나, 자신이 인생에서 겪은 체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이 직업이 최고다"라는 결론을 내린 셈이다. 한 번은 그런 학생 중 한 명과 서로의 시각에 대해 의견을 나눈 적이 있었는데 사실 나는 그 학생의 장래 희망이 이해가 안됐고, 그 학생역시 지난 시절의 내 꿈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누가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그 대화는 나에게 참 귀중한 경험이 됐다. 물론 교직이 목표가 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연구가 좋아서", "가르치는 것이 좋아서" 등등 다양하긴 한데, 꽤 많은 경우에 "한국에서 교수직은 인정을 받으니까" 라는 답변이 붙어서 온다.
그런데, 정말 그런 것일까? 내가 "한국에서 맥킨지(꼭 맥킨지 아니더라도 비슷한 회사) 다니면 인정받지"라고 말했을 때,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뭐하러 고용 안정성도 떨어지고 오래 머물지도 못할 회사를 고생해서 가냐 이거다. 백번 맞는 말이다. 나도 "훗날 학생을 가르치고 싶고 + 인정받고 싶어서" 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대학교까지 해서 10년 넘게 투자해서 얻은 그 직업이, 보수는 괜찮냐고. 그럼 또 별로라는 답변이 온다. 그럼 왜 그게 하고 싶냐고 물어보게 되는 이유다. 서로 인정받는 자리, 즉 명예에 대한 지식과 관점이 다른 거겠지...
2014년 1월 22일 수요일
손원일함 (HDW 214 class submarine)
현대중공업에서 병역특례로 근무를 시작할 때 마침 한참 건조중이었던, 214급 잠수함 3척 중 첫 번째로 만들어진 배. 훗날 고 손원일 제독의 이름을 따 손원일함으로 명명되었다. 2006년 6월 9일 진수되었으며, 기본 제원은 길이 65.3m, 폭 6.3m, 최대 속력 20노트(37㎞)로,
어뢰와 기뢰, 잠대함 유도탄을 탑재하고 있으며 승조원은 40명이다. 그 전 세대의 209급 잠수함 (역시나 HDW 설계, 건조는 대우조선해양) 에 비해서 길이와 폭이 획기적으로 늘어난 것은 아니지만, AIP (Air-Independent propulsion) system 을 통해서 잠항 작전시간이 획기적으로 늘어난 점이 매우 큰 강점으로 부각된 모델이다. 아래 사진에서 보면 잠수함 자체가 그리 안 커보일수도 있지만, 안에 들어가 보면 나름 복층에, 끝에서 끝까지 갈라면 좀 걸린다. 물론 통로가 불편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ㅎ.
사실 현재 한국에서 건조, 운영되고 있는 잠수함들은 결국 모두 독일 HDW 의 작품이다. 개념/기본/상세 설계 모두 독일에서 이루어졌고, 심지어 부품 및 자재의 상당부분이 독일 현지 업체에서 공급받아서 건조된 것이다. 209급의 경우에는 9척을 한 조선소에서 짓다보니 나중에는 설계 및 건조 노하우가 많이 축적되어, 대우조선해양이 자체 모델로 삼아 판매에 나서기도 했지만, 당시 214급은 첫 세 척이 현대, 그 다음은 대우 뭐 이런식이었다보니 아마 양쪽 조선소에도 적잖이 부담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209, 212 (독일 해군 모델) 급과 달리, 214급은 모델 개발/설계/건조가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경우가 되버려서 현장에서 발견되는 문제점들이 설계에 반영되기가 어려웠다. 최근에 손원일함 수리 문제로 간간히 뉴스 기사가 나오는 것을 보면 이런 문제가 원인일 것도 같다.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기억은, 1번함을 진수하고 좀 있다가 밀폐테스트 비슷한 걸 한다고 설계부랑 생산부 직원들을 몇십명 차출해서 배안에 넣고 해치 닫아버린 상태에서 하루밤을 지내게 했던 것. 당시 생산3부 부서장님의 진면모를 봤던 밤샘 고스톱은 또 하나의 추억이다. 아래는 1번함 진수식 날 찍은 사진.
피드 구독하기:
글 (Atom)